지난 30년 동안 한국은 민주주의와 함께.
[중앙포토] 이 시기를 바라보면서 제기되는 가장 중요한 논쟁점은 동아시아 국가 중 일본만이 근대화에 성공한 원인과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책임 소재 문제였다.그렇다고 해서 다른 요인들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으로 이어지는 상황은 결국 을사늑약과 강제합병조약으로 귀결되었다.수백 년 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서 근대화에 실패한 청과 조선이 몰락했고.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당시를 평가하고 앞날을 설계하기에 너무나 힘들었겠지만.
미국·러시아와의 외교를 통해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했다.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조선 식민지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는가.
일본이 1876년 강화도 조약을 맺을 때부터 조선을 식민지화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근대적 지식인들이 일본의 근대화가 민주주의적 개혁의 길이 아닌 군국주의의 길이라는 점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이다.민주화를 위한 오랜 국민적 노력의 산물이었다.
분단과 남북대치 상황에도 불구하고 김영삼은 군부가 다시는 정치개입을 상상할 수조차 없도록 국가수호에만 전념하게 완전 탈바꿈시켰다.위로부터의 강제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요구가 분출하는 민주정부의 교체와 함께 선진국 진입을 이루었으니 한국민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가 계승·확장·성공시켰기 때문이다.그리고 노무현의 ‘날개 달기가 이어짐으로써 가능하였다.